3:30pm이 돼서야 China town에 도착했다. Jerry 할아버지는 당장 식당에 들어가지 않고 일행들에게 시장 구경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두꺼비나 다른 특이한 음식 재료 몇 개를 파는 것말고는 한국의 재래 시장과 그리 다를 게 없는 China Town의 시장은 눈 맞느라 춥고 밥 때가 지나 배고픈 한국인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마침내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중국차를 마실 때쯤 돼서야 우리 한국인들은 몸도 마음도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팁 포함 $10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맛보고 나니 오후 5시 정도 되었다. 소재와 나는 혹시 Broadway의 뮤지컬을 볼 수 있을까 해서 투어의 일행과 헤어졌다.
City Hall Park에 갔는데 가스등이 이채로웠다. Jerry 할아버지는 공원 내의 나무 밑둥치 주변의 흙이 짙은 회색인데 무엇인 줄 아는지 일행에게 물었다. 거름인가 했는데 사실은 World Trading Center의 잔해라고 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진 않았지만 여기까지 시멘트 먼지가 쌓여있을 줄은 몰랐다. 이 곳에서 Jerry 할아버지와 친한 듯한 흑인 관리인의 열변을 들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전형적인 흑인 캐릭터 특유의 제스처와 빠른 말로, 9월 11일 테러와 관련해서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고 뉴요커들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말했던 것 같은데, 이들의 자부심을 잘 알 수 있었다.
공원을 나와서는 네덜란드인의 미국 개척 역사(후에 영국인들에게 쫓겨날 때까지의)와 당시 인디언의 복식 등을 전시하고 대리석으로 멋지게 장식된 내관의 Custom House를 거쳐서 World Trading Center 부근을 아직도 정리하는 공사 현장이자 추모 현장인 Ground Zero에 갔다. 장막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트럭에 실리는 부서진 잔해와 무역센터 근처에 있는 바람에 덩달아 파손된 건물들을 보니 9월 11일 테러가 정말 날벼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변에서는 희생자들의 유품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었고 노점에서는 무너지기 전의 멀쩡한 World Trading Center 사진을 많이 팔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역센터와 그곳에 연결되었던 시설들을 보지 못해서 안타까워했고 이 때부터 Jerry 할아버지는 테러에 비중을 많이 두어서 얘기했는데 (희생자들의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는 것, 소방관과 경찰이 Hero로 불리는 것 등) 아침을 못 먹고 점심때를 훨씬 넘긴 시점의 나는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같이 다니는 한국인 부부도 "배고파."를 연발했고 소재도 역시 점심을 먹는다는 차이나타운에는 언제 가는지 궁금해했는데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Battery Park에만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는 Ferry가 운행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근처에 사람이 탄다면 무료인 Ferry가 운행하고 있었다. 물론 조금 느린 코스이고 자유의 섬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바퀴 둘러 보고 가는 것 뿐이긴 하다. 가 본 입장에서 보니 굳이 그 섬에 내릴 필요가 있나 싶지만, 아무래도 배를 타고 가면서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는 것은 조금 난이도가 있다. 맘에 드는 사진을 얻기가 힘들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날씨가 너무 추워서 갑판에 오래 있기는 힘들었다. Jerry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이 부끄럽게도 당당하게 찬 바람을 맞으며 갑판에 서 있다가 선실 안에서 공연을 하는 가수의 열정적인 노래가 시작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왔다. 대단도 하시지!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영화에서 가끔 보던 월 스트리트의 바쁜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미국 경제의 중심답게 오래 된 석조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명한 황소상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카메라가 말썽인 나는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권투의 파이팅 포즈나 턱을 치켜든 오만한 포즈로 황소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푸른 눈에 하얀 머리를 한 전형적인 백인 할아버지이다. 한 번쯤은 Jerry Herman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계속 말썽이어서 그냥 다닐 수밖에 없었다. Youth Hostel의 자원봉사자인 것 같은데 Free Tour의 모집뿐만 아니라 유스호스텔 내에서의 Information Desk에서도 일하고 있었다. 휘리릭 말하는 듯 했던 다른 뉴요커들에 비해 나도 훨씬 알아듣기 쉽도록 영어를 구사했고 뉴욕의 지리에 해박한 듯 했다. 이 사람과 같이 다니면 뉴욕을 정말 효율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3~4박을 하며 뉴욕을 본다면 이 사람과 같이 다녔다면 2박이면 넉넉할 것 같다.
Grand Tour는 16시간을 걸어서 다니는 것인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데 그리 오래 걷지 않는다. 최고로 오래 걷는 것이 Brooklyn Bridge를 걷는 정도? 어쨌든 하루 종일 다리 아프게 걷는 것이니 칠십 노인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보고 싶어 불가피하게 투어일행과 저녁에 헤어졌지만 뉴욕을 찾을 여행객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Tour다. 토요일 8:30am까지 HI Youth Hostel의 Lobby로 오면 되는데(1) 어차피 Free Tour이므로 중간에 끼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출발 때는 스무 명 안쪽이던 일행이 Tour를 하던 도중 스무 명을 넘어버렸다.
투어 코스를 따라가다가 우리와 비슷한 코스를 움직이는 다른 투어의 사람들이 보이자 Jerry할아버지는 저 사람들은 유료 투어라고 하면서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농담했다. 이 투어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다.
사실 여행객들을 차이나타운의 어떤 식당으로 데려가면서 커미션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손해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더 싼 중국식당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제리 할아버지가 중국 요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해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미션 어쩌구 하기에 10 달러는 적은 돈이겠다.
***
(1) 물론 전날까지 신청을 하는 게 일정을 짜야 하는 Jerry 할아버지에게 좋을 것이다.
일단 다리에 대한 안내문이 있는 첫 번째 교각까지 왔다. Brooklyn Bridge는 육지와의 교통량 중 유명세에 비해서 많지 않은 양만을 담당하는데 (Light duty) 실제로 많은 교통량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Manhattan Bridge라고 했다. (Heavy duty)
Manhattan과 Brooklyn을 최초로 이은 Brooklyn Bridge는 현대 교량의 시초이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던 와이어 케이블을 사용한 공법을 사용하여 100년이 지나도록 튼튼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설계자를 포함한 21명의 기술자들이 희생되는 등 당시로서는 보편적이지 못했던 공법 때문에 그 건축과정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Jerry 할아버지는 그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Brooklyn Bridge 출처: 잊음 (-_-);;;
이제는 전설로 통하는 제리 할아버지가 브루쿨린 다리를 설명하는 모습
그런데, 난 정말 정말 정말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걸음이 무척 빠른 할아버지가 나는 듯한 속도로 앞장을 서고 말았기 때문에 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쫓아갔다. 이후의 여행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정처 없이 걸었던 적도 많았는데도 이 때는 왜 그리 걷는 걸 싫어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걷기 좋았던 Brooklyn Bridge. 나무 바닥 아래 층이 차도예요. Deborah LoGerfo "Catchin' Rays- 1998 Brooklyn Bridge" 출처: 잊음 (-_-);;;
어제 왔던 Brooklyn Bridge의 건너편에 왔다. Jerry 할아버지는 이곳이 High window (Tall Window)와 7~8단 정도의 계단, 그리고 철 난간 (Iron hand rail)이 특징인 1800년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자유의 여신상 Brooklyn Bridge, Manhattan Bridge에 (저 멀리에는 Southern Bridge까지) 뉴욕의 마천루들이 그림엽서에서처럼 보이는 이 곳의 전망 (Beautiful view라고 거듭 설명) 때문에 이 근처의 집 (Mansion) 값은 매우 비싸다고 했다. 이곳의 치안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데도 말이다.
Jerry 할아버지는 New York은 원래 1664년 네덜란드인들이 먼저 점유했던 New Amsterdam이었는데 영국인들이 후에 차지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등의 역사와 Brooklyn Architecture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었는데 Brooklyn의 건축양식 중 계단이 칠팔 개나 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노인에게는 힘들다는 농담을 했다. (투어 일행 중 많은 노인 분들이 Jerry 할아버지를 격려했다. 자신들은 아직 늙지 않았다며.) 사실 Jerry 할아버지는 설명 중에 농담을 많이 섞어서 해주었다. 농담인데 내가 알아듣지 못한 것도 많겠지. *^^*
Still Open
1994
Douglas Safranek (b. 1956)
Egg tempera on panel, 4 5/8 X 4
Museum purchase, 95.6
Brooklyn Architecture 특유의 길쭉한 창문(High window)이 보이죠?